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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할 수 없는 진실, 믿음으로의 투정

sotheb soth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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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대화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반복적으로 다루는 주제, SNS에서 끝없이 공유되는 영상, 누구나 볼 수 있는 통계와 데이터까지, 같은 현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경험은 우리 모두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도, 기후 변화 논의에서도, 심지어 일상적인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과학이 이미 답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건 조작된 데이터다라고 반박한다. 심지어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사실조차 서로 다르게 믿는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면 묘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그것을 둘러싼 해석이나 의견은 달라도 기본적인 공통 인식만큼은 형성되는 객관적 인식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와 증거를 제시해도 누군가는 끝내 부정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이 믿고 싶은 쪽으로만 해석한다. 결국 우리는 같은 사건을 보고도 서로 전혀 다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감정이 진실을 집어삼킬 때, 이런 현상이 단순히 정보 부족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오히려 지금은 반대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누구나 사실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조각만 골라 믿게 되었다.

예전에는 정보 한두 개만 봐도 세상이 돌아가는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수천 개의 기사, 수억 개의 게시글이 매일 쏟아진다. 그리고 그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감정과 신념에 맞는 부분만 취사선택해 소비한다.

정보는 소비재가 됐다. 
존재를 확증하는 명제가 생각 이라면, 지금의 미디어는 그 생각의 가능성을 잠식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에게 과연 존재를 부여할 수 있는가?

AI 추천 알고리즘은 우리가 이미 관심 있는 것만 더 많이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 입장에 유리한 사실만 접하게 되고, 그 결과 각자 다른 버전의 진실 속에 살게 된다.

이런 정보 환경이 사람들을 점점 더 감정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고, 이성이 뒤따르는 상황이 된다. 내가 이걸 믿고 싶은가 아닌가가 사실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되어버린다. 이런 현상은 정치나 사회 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건강 정보, 경제 전망, 과학적 사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을 피하고, 듣기 좋은 이야기만 붙잡으려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자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터와 증거보다 자기 기분과 정체성에 맞는 이야기를 더 신뢰한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이 진실을 집어삼킬 때, 대화와 토론은 더 이상 의미를 잃게 된다.

진실은 왜곡되고 공통분모는 사라진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우리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사실이 필요하다. 법과 제도, 과학과 기술, 교육과 미디어와 같은 모든 것은 우리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다는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믿음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기후 변화와 같은 주제에서 의견이 갈리더라도, 지구 평균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는 대부분이 동의했다. 그 이후에 "왜 그런가"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서 의견이 달라졌다. 하지만 요즘은 "온도가 오르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이 내 정체성과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은 소셜미디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알고리즘은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에 더 많은 노출을 몰아준다. 더 많은 조회수, 더 많은 좋아요가 곧 더 큰 영향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의 정확성보다 감정적 반응이 우선시되고, 사람들이 믿고 싶은 이야기만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우리는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 인식조차 잃어버리고, 각자에게 유리한 진실만 소비하는 세상으로 변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 틈을 언제나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버전의 이야기를 진실처럼 포장해 퍼뜨릴 수 있는 자원과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 한다.
사실을 인정하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해야 할 수도 있고, 내가 그동안 붙잡아온 신념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탐구하기보다는 자기 기분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그것은 결국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게 되고,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가 이미 경험한 수많은 사회적·정치적 실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와 이성이 필요하다.
 

진실을 마주하려면 단순히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호기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호기심이 없다면 새로운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용기가 없다면 불편한 현실을 끝내 외면하게 될 것이다. 호기심은 반복적인 학습으로 성장 시킬 수 있다. 진실을 존중한다는 것은 맞고 틀림을 따지는 것을 넘어, 세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항상 자기 성찰이 뒤따른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을 수 있어야 호기심은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때로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오래된 신념을 포기해야 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그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결국 편향된 믿음 속에서 스스로를 속이며 살게 될 뿐이다.
 

공유할 수 있는 진실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분모가 필요하다. 종교도, 이념도, 취향도 각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 지금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만큼은 같아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고, 함께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다.

과학혁명과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인류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공통분모를 만들어 왔다. 객관적인 사실을 밝히고 검증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같은 물리 법칙을 배우고, 같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기후 변화를 이해하며,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토론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투정 속에서 그 기반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감정이 사실을 집어삼키고, 각자에게 유리한 믿음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공유할 수 있는 진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언제나 더 시끄럽고 더 뻔뻔함들이 차지한다.


질문해 보자.

우리가 모두 함께 동의할 수 있는 진실이 사라진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을까?

답은 단순하다. 진실을 향한 우리의 태도,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는 용기. 감정이나 이익보다 사실을 우선하려는 최소한의 노력. 그것이 무너진다면,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세상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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